이석 황실후손 나이 학력
전주 한옥마을에서 여사 해설 콘텐츠를 진행하는 '황실 후손'에게 지자체가 연 9000만 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어 개인에게 과도한 특혜가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주시는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이자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의 10남인 이석 씨에게 황손과 함께 하는 전통문화 콘텐츠를 맡기고 있습니다.
'황손과 함께 하는 전통문화 체험' 사업비 구성 및 집행 계획에 따르면 전주시는 이석 이사장에게 활동비, 명사 강사비, 물품구입비, 홍보비, 교재 인쇄비 등 총 7000만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석 이사장의 1회당 강의료는 100만 원으로 전주시는 '역사이야기' 활동비로 연간 3600만 원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석 이사장에게 '명사 강사비' 명목으로 2000만 원을 추가 지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전주시 지방 보조금 관리 조례' 상 이석 이사장에게 회당 백만원씩 강사비를 지급할 법률상 규정이나 국가 지정 여부, 여타 조례에 따른 지출 근거는 불명확하다고 합니다.
이에 연간 7000만 원의 예산 편성을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주시는 2000만 원의 예산을 편성해 공공요금(전기·수도·가스)과 업무지원비를 전부 문화재단에 지급하여 이석 이사장이 한옥민박인 '승광재'와 '삼도헌'에 무상으로 머물며 관리토록 하고 있습니다. 승광재는 조선 왕조 발상지이지만, 현재는 한옥민박으로 평일 7만원, 주말 11만원의 숙박료를 받고 있습니다. 승광재와 삼도헌에서 발생하는 이익은 전주문화재단이 가져가고 있습니다.
강의료 선정과 지원이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전주시는 조례를 포괄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전주시 관계자는 "황손과 함께 하는 전통문화 체험은 문화적 활동으로 '문화예술진흥에 관한 조례'를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한옥마을에 대한 문화 활동 사업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사업이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점검하고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전주시 서난이 의원은 "인건비나 강의료에 맞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위촉해서 인건비를 선정하지 않았다. 개인에 대한 특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명이명가'도 조례를 만들어 월 10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황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조례도 없이 법 위에서 지원을 해줘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전주시)의회에서 과거부터 승광재 공간을 쓰는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태도가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네티즌들의 반응는 분분한데요, 법과 원칙 대로 적용해서 지급해야한다는 의견과 우리나라 황실 후손에게 그 정도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의견으로 분분합니다. 그러면 기사룰 통해 근황을 알리고 있는 이석 이사장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석 이사장 프로필]
이석 본명: 이해석
이석 나이: 1941년 8월 30일생 만 78세
이석 고향: 서울특별시
이석 본관: 전주 이씨
이석 학력: 서울창경초등학교, 경동중학교, 경동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어학과
이석 가족: 아버지 의친왕(이강), 어머니 홍정순, 딸 이홍(1971년생, 탤런트), 딸 이진(1976년생, 도예가), 아들 1명
이석 약력: 황실문화재단 총재 겸 이사장, 대전사이어스페스티벌 홍보대사(2006), 전주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2005), 황실보존국민연합회 회장
이석은 의친왕의 10남으로, 이석은 황실 족보 상 이름이고, 본명은 이해석이고, 아명은 이영길입니다. 이석은 현재 생존해 있는 고종황제의 손자 중 유일하게 국내에서 거주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언론 등에서 잘못 알려져 이석을 '마지막 황손'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이석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에 입학했는데, 스페인어과에 입학한 이유는 "왕실이 존재하는 스페인 공주와 결혼하기 위함"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이석은 황족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황실의 모든 재산은 이승만 정권 아래 대한민국 정부의 소유로 몰수됐고, 그나마 남은 재산도 순종황제 사후에 황실의 적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 그리고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에게 돌아갔습니다.
이석은 생활고로 인해 대학 재학 중에도 DJ 일을 보았고 가수의 길을 걷게도 되는데, 미8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워커힐 호텔에서 밤무대 가수를 했습니다. 이후 이석은 방송 MC와 건전가수로도 활동했습니다. 이때 황족이 광대를 해서 돈을 번다고 이석은 집안 어른들에게 매우 혼이 났다고 합니다. 19세기 말에 태어나서 시아버지인 고종황제와는 다르게 사진 찍는 것까지 싫어했던 순정효황후는 망한 황족이지만 이석이 가수 노릇을 한다는 게 좋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석의 아버지인 의친왕은 1955년에 사망하여 이석이 가수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석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고, '비둘기집'이라는 건전가요를 불러 유명해졌습니다. 이후 이석은 1979년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살아남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다 공부의 꿈을 포기하고 결국 1989년에 귀국했습니다. 이석은 가정적으로 평탄하지 못해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기 때문에 부인이었던 사람이 4명이었다고 합니다.
이석은 첫째 부인 독고정희와의 사이에서 탤런트 이홍(1971년생)을, 이혼 후 둘째 부인 이진옥과의 사이에서 도예가 이진(1976년생)을, 셋째 부인에게서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석의 장녀 이홍은 연예인으로 데뷔한 적이 있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차녀 이진은 도예가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딸은 언론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이석의 아들은 차녀 이진보다 3살 아래이며 컴퓨터를 전공한 것으로 추정될 뿐입니다.
이석은 2005년부터 전주대학교 사학과에서 강사로 있으며, '황실문화재단' 총재로 전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석은 전주시 소유의 승광재에서 가이드를 해주고 있으며, 현재 전국을 돌면서 역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2018년 10월 이석은 재미교포 인터넷 사업가 앤드류 리를 세자로 책봉한다고 했습니다. 언론에 의하면 앤드류 리는 '조선 왕실의 후손'이라고만 소개되었을 뿐 구체적인 혈연관계는 밝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석은 방송인자 미국에서 돌아온 1990년대 이후부터 대한민국 황실 복원을 부르짖었기 때문에, 황족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석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자주 했기 때문에 이석을 황위 요구자로 아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일 황실이 복원되더라도 이석의 황위 계승권 순위는 높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황실 복원을 주장할 만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상으로 이석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