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관 싱어즈


9일 EBS '싱어즈: 시대와 함께 울고 웃다'에 우리나라 트로트계의 전설이자 국민가수 송대관 편이 방송됩니다. 암울했던 1970년대 송대관은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해뜰날'을 발표하면 사람들의 애환을 달랬습니다. 



그 결과 송대관은 가수왕, 최고 인기가요상, 10대가수상 등 3관왕의 영예를 누리며 전국 순회공연을 할 정도로 그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송대관이 서민의 아픔을 달랜 노래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유년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송대관의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였고, 아버지는 6·25 전쟁 중 실종됐다고 하네요. 송대관은 가수의 꿈을 가지고 무작정 상경하였다고 하는데요, 가수협회 테스트에 합격해 오아시스 레코드에 입사했습니다. 



그 곳에서 나훈아와 남진과 동기가 됐다고 합니다. 송대관은 나훈아와 남진의 활약을 지켜 보면서, 자신의 삶에서 비롯한 가사와 쉬운 멜로디로 서민들에게 한 줄기 빛을 주는 국민가수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가수 송대관에 대해 포스팅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송대관 프로필]


송대관 나이: 1946년 6월 2일생 만 73세

송대관 고향: 전라북도 정읍시

송대관 키: 165cm

송대관 종교: 개신교

송대관 학력: 정읍태인초등학교, 전주서중학교, 전주영생고등학교

송대관 가족: 배우자 이정심, 슬하 2남

송대관 소속사: 예찬엔터테인먼트

송대관 데뷔: 1967년 노래 '인정많은 아저씨'

송대관 약력: 전통시장 및 골목상권 활성화 홍보대사(2016) 외 10건

송대관 수상내역: 제12회 대한민국 전통가요대상 남자 7대가수상(2012) 외 18건



송대관은 전라북도 정읍 출신으로, 송대관의 할아버지는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표하며 독립운동을 도와 일제의 보안법 위반으로 갖은 고초를 겪은 송영근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한국 전쟁으로 인해 실종되어 송대관은 어머니 밑에서 성장하였습니다. 1965년 송대관은 전주영생고등학교를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오아시스 레코드의 사장인 손진석을 만나 그의 일을 도우면서 가수 트레이닝을 받았다고 하네요. 



1967년 송대관은 정통 트로트 '인정많은 아저씨'를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하였는데요, 송대관이 데뷔하던 당시, 나훈아와 남진이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워낙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송대관은 아무런 호응을 얻지 못하고 무명 생활을 하였습니다. 1971년 송대관은 부르스 풍의 '세월이 약이겠지요'를 발표하였는데, 이 곡이 대중들로부터 인지도를 얻으며 방송 출연량이 증가하였다고 합니다. 



1975년 송대관은 본인이 작사한 '해뜰날'이 크게 히트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고 송대관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해뜰날'은 반복적으로 따라부르기도 쉽고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가사와 경쾌한 멜로디로 당시 나훈아, 남진, 하춘화 등 대세 가수들을 제치며 유명해졌습니다. 1976년 송대관은 방송국 가요대상 3개를 수상하고 동시에 가수왕에 등극했습니다.



'해뜰날'의 대히트로 스타가 됐던 송대관은 이 시기부터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며 가수 활동에 전념하였고, 그 해에 영화에도 출연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송대관은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1980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요, 돈을 벌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하면 생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10년의 미국 생활 후인 1988년 송대관은 귀국하여 '혼자랍니다'를 부르며 인지도를 얻었으며, 1989년 '정 때문에'의 발표로 20만장의 레코드 판매량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라디오 차트 부문에서도 3개월간 1위를 하며 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차표 한장' '인생은 생방송'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 수많은 곡을 히트시켰는데요, '네 박자'는 여러 세대를 포섭하며 누구나 부르는 국민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송대관은 1980년대 후반부터 트로트를 부활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 체제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특이하게도 우연일지는 몰라도, 태진아는 충청도, 송대관은 전라도, 설운도와 현철은 경상도 출신이라고 합니다. 



송대관은 태진아와는 라이벌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절친한 사이로 같이 광고 출연을 하기도 하고 라이벌 콘서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2009년 송대관은 KBS 드라마 '공주가 돌아왔다', 2011년 SBS 드라마 '신기생뎐'의 두 편의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자로서도 활동을 하였습니다.



송대관은 부동산 투자 명목으로 지인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되기도 하는 사건이 있었지만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고 사기 혐의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이후 출연정지 처분이 해제되어 방송에 복귀하였습니다. 



2018년 송대관은 한 방송에 출연하여 160억 정도의 빚 가운데 90% 정도를 갚고 은행 대출로 새 집도 장만했다는 근황을 전하기도 했는데요, 지난 몇 년 동안 송대관은 가리는 거 없이 닥치는 대로 공연을 다니면서 삼각김밥으로 허기를 채우며 착실히 빚을 갚았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가수 송대관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모두가 건강한 올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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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철 싱어즈


22일 서울 중구 한국 프레스센터에서는 힌국대중음악상 후보 발표 기자회견이 열였다고 합니다. 기자회견에서는 선정위원장 김창남과 선정위원 고종석, 박희아, 정민재가 참석했습니다. 



김창남 선정위원장은 "이번 17회 한국대중음악상 공로상 수상자는 김수철이다"라고 밝혔으며 "감수철은 70년대 말부터 40여년 간 다양한 음악과 성과를 내서 후배 음악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작은 거인' 김수철이 이뤄온 위대한 거인으로서의 업적에 대한 작은 보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2004년부터 시작한 한국대중음악상은 가수보다 음반과 곡에 주목하고 판매량이 아닌 음악적 성취를 선정 기준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한편 26일 방영될 E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싱어즈: 시대와 함께 울고 웃다'에 김수철 편이 방송된다고 합니다. '젊은 그대' '못다 핀 꽃 한 송이' '치키치키 차카차카' 등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노래를 선보이는 것은 물론 '불림 소리' '팔만대장경' '기타 산조' 등으로 한국적 정서와 가락을 전 세계에 알린 작은 거인 김수철을 재조명합니다. 그러면 오늘은 작은 거인 김수철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김수철 프로필]


김수철 나이: 1957년 4월 7일생 만 64세

김수철 고향: 서울특별시

김수철 종교: 불교

김수철 학력: 장충중학교, 용산공업고등학교, 광운대학교 전자통신공학과,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정책과정 수료

김수철 장르: 록 음악

김수철 데뷔: 1977년 '작은 거인'



철물점 주인 아들로 태어난 김수철은 어렸을 적에 TV에서 신중현의 노래와 기타 연주를 보면서 음악에 눈을 떴고, 광운공대 전자통신공학과 재학 중이던 1977년 KBS 라디오 프로그램 '젊음의 찬가'에서 '퀘스천'이라는 밴드 멤버로 데뷔해, 이듬해 '작은 거인'이라는 밴드의 프론트맨으로 활동했습니다. 1983년 '작은 거인' 멤버들이 여러 사정으로 떠나고 김수철의 집안에서도 음악에 대한 반대가 있었고, 김수철도 본인의 대학원 진학 등의 사정으로 고별 앨범 형식으로 솔로 1집을 냈습니다. 



김수철의 솔로 1집에 수록되었던 '못다 핀 꽃 한송이' '별리' '내일' 등이 히트를 하면서 가수왕을 차지하기도 했고, 2·3 집 수록곡인 '젊은 그대' '나도야 간다' 등이 또 히트를 치면서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로 부상하였습니다. 당시 가왕은 조용필의 시대로 가수왕 독점이 후배들에게 못할 짓이라서 조용필이 가수왕 은퇴 선언을 한 1986년 이전까지 한때 조용필보다 우위에 있었던 가수 둘 중의 한명이었습니다. 다른 한 명은 1982년 '잊혀진 계절'로 가수왕을 탄 이용이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 김수철은 대중가요보다는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곡인 '치키차카차카'을 만들고 불렀고 주제곡 뿐만 아니라 삽입곡들도 김수철이 직접 만들고 불렀습니다. 특히 김수철은 국악의 현대화와 퓨전 음악에 엄청난 공헌을 하였는데, 대부분 가수들이 국악 접목 시도를 1회성 이벤트로 끝났기 때문에 국악계에선 오히려 꺼려하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수철은 국악계의 명인들을 찾아다니면서 몇 년 동안 정식으로 배웠다고 하네요. 그후 김수철은 '황천길' '불림소리' 음반을 냈습니다. 또한 판소리 영화 '서편제'의 음악을 담당하였고 '태백산맥' 등 수많은 음악 활동을 하였습니다.



김수철의 퓨전 음악들은 유명한 것이 많은데,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제작된 칠성사이다 CF로 비디오 아티스트의 거장 백남준이 만든 영상 작품에 입힌 BGM을 작곡하여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스타일의 CF였다고 합니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행사음악을 비롯하여 1993년 무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2002 한일월드컵,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등의 행사음악을 김수철이 담당했습니다.



김수철은 연극 무대 배경음악과 영화음악의 작업도 했었는데요, 영화 '고래사냥'의 경우 주연배우로도 출연한 것은 물론 음악도 같이 맡아 참여했습니다. 김수철은 OST 작곡가로서도 계속 활동하였고 후반 작업을 소홀히 하는 한국 영화계 풍토 속에서 영화음악의 자리를 제대로 잡게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한국 영화음악의 수준을 높인 작곡가로서 한국 영화음악을 논할 때 김수철은 빠질 수 없는 작곡가 중의 한 명입니다.



영화 서편제 이후에 김수철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하였고 2010년 제천 국제음악 영화제에서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2018년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가운데 김수철 1집이 32위, 작은 거인 2집이 47위에 선정되었습니다. 서편제 OST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했고 서편제에 수록된 가장 유명한 곡인 '천년학'의 작곡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마감 직전까지 작곡을 못한 김수철은 마감날 스튜디오 한켠에 있던 피아노 앞에서 25분간 써내려갔던 곡이 그 유명한 '천년학'이라고 합니다.



1980년대 김수철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기타를 들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모습의 열정적인 무대 매너를 기억할 것입니다. 김수철은 기타 실력이 뛰어나는 것은 물론 국악과 록 음악을 접목시키거나 최근 가수들과 콜라보도 하는 등 실험적인 음악성은 타의추종을 불허합니다. 



김수철은 다양한 장르 음악들을 시도하며 영화음악, 국악작곡집, 무용음악, 드라마음악, 팔만대장경음악, 86아시안게임 음악, 88올림픽 음악, 2002 한일월드컵 개막식 등의 국제적인 행사음악 작곡과 음악 감독을 통하여 독보적인 김수철의 음악세계를 구축해왔습니다. 김수철은 작곡가이자 가수, 연주자, 음악감독, 문화위원, 국악인이기도한데, 하나의 명칭으로 정의내릴 수 없는 뮤지션입니다. 김수철은 우리 음악사에 길이 남을 진정한 '작은 거인'입니다.



이상으로 김수철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한 새해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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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싱어즈 


매주 일요일 밤 EBS1 다큐멘터리프로그램 '싱어즈'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온 국민들의 시름과 애환을 달래주고 때로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준 위대한 가수들을 집중 재조명하는 음악&인터뷰 다큐멘터리입니다. 



송창식, 양희은, 전영록, 혜은이, 이은하, 한대수, 김수철, 송대관, 이장희 등 10명의 가수들이 릴레이로 출연하며, 내레이션이 없이 오직 가수의 노래와 진중한 인터뷰로 진행되는데, 19일에는 싱어즈 5회차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음악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온 모던 포크의 진정한 개척자인 한대수 편이 방송됩니다. 



싱어즈는 국내 최초로 영상용 텔레프롬프터를 제작해 출연자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특수 촬영을 진행하여 시청자가 안방극장을 통해 스타와 생생한게 대면하는 느낌을 갖게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한국 대중음악에 있어 독보적인 존재감을 지닌 한대수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한대수 프로필]



한대수 나이: 1948년 3월 12일생 만 71세

한대수 고향: 부산광역시

한대수 종교: 개신교

한대수 학력: 경남고등학교, 미국 뉴햄프셔 주립대학교 수의과대학(중퇴)

한대수 가족: 할아버지 한영교, 아버지 한창석, 어머니 박정자, 배우자 옥사나, 딸 한양호(2006년생, 영어이름은 미쉘)

한대수 직업: 가수, 작곡가

한대수 장르: 포크 록

한대수 데뷔: 1974년 1집 앨범 '멀고 먼 길'



한대수는 부산 출신으로 무녀독남 외아들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핵물리학자이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이며, 할아버지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의 신학대학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고 합니다. 한대수가 7살 무렵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아버지가 실종되고, 이후 어머니는 재가하는 바람에 신학자인 할아버지와 살았습니다. 할아버지 한영교는 언더우드 박사와 함께 연세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냈습니다. 



한대수의 할아버지가 한국 축산계에 이바지하라는 의미에서 한대수에게 수의학을 전공하라고 권했고 한대수는 뉴햄프셔 대학에서 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곧 자퇴하고 적성을 찾아 뉴욕 사진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한대수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했고 뉴요커로 살면서 영어 책, 영어 신문 독서량이 엄청나서 고급지식은 거의 영어로 배워서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더 잘한다고 합니다.



1970년대 한대수는 데뷔하자마자 한국 포크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는 파격적인 1집 커버 사진과 수록곡인 '물 좀 주소'때문입니다. 그 당시 정부에서는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며 제재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한대수의 2집 '고무신'은 전곡이 체제 전복을 꾀한다는 이유로 전량이 정부에 의해 회수되었으며 심지어 마스터 테이프마저 압수를 당했습니다. 



이후 한대수는 실의에 빠져 미국으로 떠났다가 1989년 쯤 귀국해 앨범을 내고, 2008년 쯤에 다시 실의에 빠져 미국으로 아예 떠나려다가 한 음악 관계자를 만나 인연을 맺고 국내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대수는 일본, 중국에서 공연하기도 하였으며, 김용옥과 함께 콘서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대수의 1집, 3집이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한대수의 노래를 들어보면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목소리로 부르지만 그 속에는 애환과 깊은 포스가 풍긴다고 합니다. 인디밴드에서 한대수는 포크 록의 대부이자 대선배로 존경받으며 여러 밴드들이 모여서 '물 좀 주소'만 리메이크한 앨범이 따로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기존 포크 가수들이 외국곡을 번안하여 불렀던 것과 달리 한대수는 데뷔 때무터 자신이 스스로 곡과 가사를 만들어 싱어송라이터로서 활동했습니다. 이는 기존 포크음악 가수와는 아주 큰 차이점으로 한국 포크음악이 발전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한 선구자였다는 점에서 큰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한대수의 아내는 무용가 김명신이었으나 1990년대 서로의 관계를 정리하고, 한대수는 자살까지 하려고 했으나 1992년 모델 출신 몽골계 러시아인이며 22세 연하인 옥사나 알페로바를 만나 재혼했습니다. 



결혼 15년 만인 2006년 딸 한양호를 낳았는데, 이 당시 한대수의 나이가 59세였습니다. 가수 이상은은 한대수를 항상 롤모델로 꼽을 정도로 두 사람의 친분 관계는 유명하다고 합니다. 일본 민간 문화운동단체인 '크로스비트 아시아'에서 주최한 한대수의 1997년 후쿠오카 공연에서 이상은은 코러스를 맡으면서 처음 만났는데, 둘 다 생일도 같고, 한대수는 무녀독남, 이상은은 무남독녀로 성향도 비슷하고 방랑벽이 있는 성격에 예술 쪽으로도 공통점이 많아 친해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앨범 자켓사진과 정제되지 않은 듯한 목소리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한대수의 정신세계는 상당히 난해한 편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한대수의 언어 선택에서도 잘 드러난다고 합니다. 평소 한대수는 '양호하다'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해 주변 사람들이 안부를 물으면 언제나 웃는 얼굴로 '양호합니다'라고 대답하며 딸의 작명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또한 한대수는 '돈'보다는 '화폐'라는 단어를 선호한다고 하네요. 



2010년 아내 옥사나가 심한 알콜중독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고, 한대수 본인도 심장 이식 수술을 고려했을 정도로 건강이 안좋습니다. 한대수가 쓴 책을 보면 사회풍자적인 모습이 보이고, 뉴요커로 살아오면서 겪은 이야기들과 밥 딜런에 대한 평가 및 유대계들에 대한 특이한 기록 등을 다뤘다고 합니다.



캐나다 기타 브랜드인 카파렐리에서 한대수는 시그네쳐 어쿠스틱 기타를 두번 째 모델까지 만들었고, 두번 째로 나온 한대수의 시그네쳐는 딸의 영어이름을 딴 미쉘이라고 지었습니다. 기타로서의 평가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고 울림도 크고 범용적이라 초급자부터 상급 연주자들까지 어우르는 모델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가겹 대비 성능도 나쁘지 않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한대수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쌀쌀한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남은 하루 활기차게 잘 마무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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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수 나이 키 잭팟


배우 이연수가 데뷔 40년 만에 첫 토크쇼 '라디오스타'에 출연합니다. 8일에 방영되는 MBC '라디오스타'에는 정호근, 권일용, 이연수, 장동민이 출연하는 '천태만상 인간세상♬' 특집으로 꾸며집니다. 



이연수는 1980년 'MBC 어린이 합창단'으로 데뷔하였으며.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 '걸어서 하늘까지' '슬픈 연가' 등 연이어 MBC 작품에서 연기를 하여 'MBC의 딸'에 등극했습니다. 첫 토크쇼도 MBC '라디오스타'를 선택해 이연수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합니다. 데뷔 후부터 인기가 있었던 이연수는 '80년대 설현'으로 불리던 과거를 털어놔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연수는 과거 광고를 너무 많이 찍어 어떤 광고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라고 하네요. 그럼에도 못 찍어본 유일한 광고가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1993년 이연수는 연예계 활동을 중단하며 사라졌는데, 그 이유를 솔직히 밝혔다고 합니다. 이연수는 공백기 도중 큰 교통사고가 났었다고 말해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는 후문입니다. 이연수는 팬 덕분에 라스베가스에서 잭팟을 터뜨린 사연을 공개하며 당시의 꿈 같은 상황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어떠한 이야기들을 풀어낼지 궁금해집니다. 오늘은 이연수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이연수 프로필]


이연수 나이: 1970년 3월 7일생 만 49세

이연수 고향: 서울특별시

이연수 키: 163cm

이연수 가족: 1남 3녀 중 3녀

이연수 데뷔: 1981년 MBC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



1980년 이연수는 MBC 어린이 합창단 단원으로 데뷔하였으며, 1981년에는 MBC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에서 5학년 5반 부반장 역을 맡으며 데뷔하였습니다. 이연수는 80년대 인기있는 배우로 채시라, 김혜수, 이상아 등이 유명해지기 전까지 하희라. 김혜선과 힘께 최고의 하이틴 스타였으며 온갖 드라마와 CF를 독식했습니다. 



이연수가 그 당시 출연했더 CF가 총 50여편이었다고 하네요. 이연수의 1년 모델 출연료가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인 800만원이었을 정도로 이연수는 대단한 스타였습니다. 한창 이연수가 잘 나갔을 때 남자팬들 중에  YG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양현석도 있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이연수는 어린 나이에 부와 인기를 두루 갖췄지만,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1993년에 갑자기 브라운관을 떠났습니다. 이연수는 5세 때 처음 연예계에 데뷔해 MBC 합창단원으로 노래하다 아역 탤런트로 데뷔해 줄곧 한 길만 걸어오다 보니 연예인, 특히 나이 어린 여자 탤런트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많은 회의를 갖게 되었고 결국 박수 칠때 떠나는 힘든 결정을 내렸다고 하네요. 



이연수는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때였어요. 연기에 대한 열정이 없었나봐요,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독한 마음도 덜했구요. 지금과 달리 그때는 연예인을 별종 취급했는데 어린 나이에 그런 게 너무 힘들었어요. 어머니가 반대할 수 있었는데 제 뜻을 지지해주셔서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었죠" 이연수는 1993년부터 2003년까지 10년 세월을 보통사람으로 살았고, 그렇게 꿈꿔왔던 평범한 삶이었건만 생각만큼 쉽지도 순탄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연수는 어떤 길로 갈까 고민하다 일단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이런저런 어려움으로 인해 6개월여 만에 유학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무렵 이연수에게 결혼할 기회도 있었지만 이 역시 결실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연수는 어머니와 카페를 경영한 적도 있었다고 하네요. 중간에 영화 한 편 찍어도 될 듯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1998년 IMF 때 이연수는 열성 팬 중 한 명이 미국에서 성공했다며 어머니와 함께 미국 여행을 한번 시켜주겠다고 해서 초대를 받고 라스베가스에 갔다가 8만 달러와 3만 달러 잿판을 연달아 터뜨렸습니다. 주변애 소문이 나서 흐지부지 쓰고 없어지기는 했지만 이연수가 경제적으로 힘들던 시기였기 때문에 너무도 요긴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연수는 한번 요행을 경험한 만큼 로또나 복권을 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선언도 했습니다. 이연수는 연기를 계속 했었다면 어떤 높은 위치에 올라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카메라 밖에서 경험한 많은 일들이 돌이켜보면 너무나 소중했다고 하네요. 



2005년쯤 우연한 기회에 이연수는 연기활동을 재개했는데, 지인의 소개로  '강산미인'이라는 중국 드라마에 출연할 기회를 가지면서 연기에 대한 열정이 다시 생겨났습니다. 이연수는 한국으로 돌아와 '호랑이 선생님'의 조경환과 주변의 연기자들에게 연기활동 재개 의사를 밝혔고, 곧바로 조경환의 도움으로 '슬픈연가'에서 연정훈의 장애인 누나로 출연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후 이연수는 '엄마의 장국집'이라는 중국 드라마와 '새야새야'라는 단편 드라마 등에 출연했습니다. 또한 2006년 이연수는개봉한 영화 '플라이, 대디'로영화까지 손을 뻗치며 본격적인 컴백을 알렸습니다. '플라이, 대디'에서 이연수는 이문식의 아내로 나와 좀 고민은 했지만 시놉시스가 워낙 좋고 폭넓은 연기를 할 기회가 되는 것 같아 선택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6년 4월부터 이연수는 SBS '불타는 청춘'에 출연하여 변하지 않은 외모로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드라마나 스크린에서 자주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배우 이연수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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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린 효능 복용


두통약인 줄만 알았던 아스피린에 숨겨진 효능이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아스피린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호주 멜버른 대학 연구팀에서 아스피린 소량를 꾸준히 복용하게 되면 심혈관계 질환과 암, 치매까지 예방할 수 있다는 발표가 나왔다고 합니다. 영국 에딘버러 대학 팀도 대장암 환자와 건강한 사람 5천 명을 대상으로 저단위 아스피린을 1년간 꾸준히 복용했더니 대장암 위험이 22% 줄어들었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는 출혈 위험이 높지 않은 50~59세 남녀 대장암 예방을 위해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900~1300mg 의 고용량 아스피린은 급성 편두통을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고 81~325mg 의 저용량 내지 표준 용량의 아스피린은 편두통 재발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고 합니다. 

 


아스피린은 1897년 최초로 합성된 해열·소염 진통제이자 혈전(피떡) 예방약입니다. 500mg 고용량 아스피린은 감기로 인한 발열, 근육통, 관절염 등 치료에 사용되고 혈전으로 인한 심뇌혈관 질환 예방이 목적일 경우는 100mg 이하 저용량 아스피린이 쓰입니다. 시중에는 '아스피린 프로텍트'라는 오리지널약과 복제약이 여러 개가 나와있다고 합니다.



경희대학교 심혈관센터 김원 교수는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이 뇌졸증과 심근경색을 급격히 감소시킨다는 1998년 대규모 연구결과로 인해 지금까지 심뇌혈관의 1,2차 예방에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심뇌혈관질환 없는 사람 대상 아스피린 예방효과는 아직까지 논란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스피린은 혈액 중 피를 뭉치게 하는 역할을 하는 혈소판 작용을 억제하면 피가 응집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출혈이 발생할 위험이 따릅니다. 아스피린 복용자에 관찰되는 대표적 부작용은 손 발에 멍이 쉽게 들고 위점막 출혈로 인한 속쓰림 증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치아를 빼거나 내시경 시술 시에는 출혈 우려로 아스피린 복용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2016년 미국질병예방특별위원회 분석에 다르면 아스피린 복용은 심근경색 22%, 그로 인한 사망률울 6% 줄이는 반면 주요 위장관출혈 59%, 뇌출혈을 33%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심뇌혈관질환 감소와 함께 출혈 부작용 위험도 따르는 만큼 아스피린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은 삼가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입니다. 



전문가들은 심뇌혈관질환을 이미 겪은 이들이 재발을 막기 위한 '2차 예방 목적'의 저용량 아스피린 복용은 꼭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심혈관질환 이후 아스피린을 복용하면 1년간 재발률을 30~50% 막아줄 수 있다고 합니다. 심뇌혈관질환이 없는데도 일상적으로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할 수 있는데 이를 '1치 예방 요법'이라고 합니다. 



1차 예방은 심뇌혈관질환 발생 자체를 막는 것으로 2차 예방보다 더 좋은 아스피린 사용법입니다. 하지만 최소 5~10년 이상 꾸준히 사용하는 경우에만 효과가 일부 있으며 이마저도 장기사용 시 출혈과 위장관계 부작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럴 땐 담당 주치의와 상담을 통해 반드시 득실을 따져 본 뒤 복용 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특히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고지혈증, 비만 등 가족력을 갖고 있다면 향후 심뇌혈관질환 발생 고위험군이기 때문에 복용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스피린 복용과 중단의 판단은 자신이 먹고있는 게 1차 예방용인지, 2차 예방용인지 그목적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며 적어도 마지막 받은 처방전은 휴대전화 사진으로 저장해 항상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상기 설명된 것을 정리하면서, 아스피린에 대한 주요 사항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스피린 효능: 심근경색증, 놔경색(중풍) 등은 혈전이 동맥에 생겨서, 혈액이 흐르는 것을 막아서 조직에 산소와 영양분이 부족하게 됩니다. 이 혈전이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생기면 심근경색이, 뇌에 있는 혈관에 생기게 되면 뇌경색(중풍)이 일어납니다. 혈전은 적혈구, 혈소판, 피브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스피린은 혈전을 이루는 성분들 중 혈소판들이 서로 엉겨붙는 것(혈소판 응집)을 막음으로써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습니다. 아스피린의 혈소판 응집 방지 효과는 빨라서 복용한 지 1시간이 자나면 효가가 나타납니다. 또한 아스피린을 씹어먹게 되면 효가가 더 빨리 나타나기 때문에 심한 가슴의 통증으로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환자들은 아스피린을 씹어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 아스피린 부작용: 아스피린은 혈전을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에 출혈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상처가 났을 때 피가 빨리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아스피린은 위점막(산도가 높은 위산으로부터 위장을 보호)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기 때문에, 아스피린을 먹게되면 위산에 의해 위장이 쉽게 다치게 되기 때문에 위장에 출혈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거기다 아스피린은 혈전 생기는 것을 막기 때문에 위장 출혈시 피가 쉽게 멈추지 않게 됩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위장관 출혈이 있거나 뇌출혈을 포함한 출혈의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은 아스피린을 피해야 합니다.



■ 아스피린을 복용해야 하는 환자: 심근경색증, 뇌경색, 말초혈관질환 환자 그리고 심실세동 환자 중 와파린과 같은 경구용 항응고제를 먹지 못하는 환자와 당뇨병 환자 중 일부라고 합니다.  즉 아스피린은 심순환기 질환을 앓았던 환자들에게 권장되는데, 그 이유는 심순환기질환은 재발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혈전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아스피린이 권장됩니다. 심실세동은 심장의 박동이 불규칙하게 되는 질환 중 하나인데 이때 심실이 제대로 수축하지 않게 되어 심실내에서 혈전이 생기기 쉽다고 합니다.



■ 아스피린 복용량: 심환기 질환을 예방할 목적으로는 100mg 이하의 저용량 아스피린을 복용합니다. 아스피린을 하루에 200mg 이상 복용할 경우, 100mg 이하로 복용했을 경우에 비해 심한출혈이 일어날 확률이 2배 이상 높다는 임상실험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심순환기 질환의 재발을 예방할 목적으로는 하루 100mg 보다 많은 양의 아스피린이 필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아스피린을 진통의 목적(발열, 근육통, 관절염 등)으로 사용하는경우에는 최소한 500mg을 복용해야한다고 합니다.





■ 아스피린 복용 기간: 심순환기 질환의 재발을 예방할 목적으로는 아스피린을 평생 복용해야합니다. 다만 아스피린의 사용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된 경우인 출혈 등이 있을 경우에는 의사와 상의하여 아스피린 사용을 중단해야 합니다.



■ 아스피린 종류: 아스피린은 두 가지 종류의 경구형 제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반 아스피린이라고 불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스피린 장용정(아스피린 프로텍트)인데, 아스피린 장용정은 일반 아스피린정에 특수 코팅을 해서 위에서 녹지 않고 장에서 녹아 흡수되도록 만든 제형리라고 합니다. 아스피린 장용정이 위점막 자극이 덜하여 일반 아스피린보다 위장장애가 적다고 하여 더 비싼 값에 팔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심장전문의학회에서는 장용정이 아닌 일반 아스피린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장용정 아스피린이 일반 아스피린에 비해 위장관 출혈이 더 적다는 확실한 근거가 아직 없다는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아스피린에 의한 위장장애는 아스피린 자체가 위점막을 자극해서 생기기 보다는 혈액으로 흡수된 아스피린이 위점막을 만드는 효소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때문에 생긴다고 보는 것입니다. 장용정 아스피린도 일반 아스피린처럼 혈액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위점막을 만드는 효소에 대해 일반 아스피린과 똑같이 작용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장용정 아스피린은 일반 아스피린에 비해 심순환기 질환 예방 효과가 더 적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스피린은 산성에서 잘 흡수되는데 위장은 장보다 더 강한 산성이기 때문에 위에서 녹는 일반 아스피린이 더 잘 흡수됩니다. 따라서 비싼 장용정 아스피린(아스피린 프로텍트)를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 아스피린 복용시 주의점: 아스피린에 의한 출혈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약들과 아스피린의 효과를 감소시키는 약들과 함께 복용하면 안 되겠죠? 아스피린에 의한 출혈의 위험을 증가시키는 약들은 주로 전문의약품이거나 처방약으로 반드시 의사나 약사와 먼저 상의를 하고 복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스피린의 효과를 감소시키는 약들은 근육통, 타박상 등에 사용되는 진통제 계통과 일반의약품에 많은데, 이들은 엉겨붙지 않게 하는 아스피린의 작용을 방해하여 아스피린의 효과를 감소시킵니다. 아스피린을 복용한다면 두통, 감기, 근육통, 타박상 등의 진통제를 살 때  의사나 약사와 상의해서 복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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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벤다졸 복용법 가격  


폐암 말기 환자가 효과를 봤다고 알려져 파장을 일으켰던 개 구충제 '펜벤다졸'에 이어, 사람 구충제인 '알벤다졸'이 항암 및 비염 치료와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펜벤다졸의 인기가 치솟는 이유는 지난해 말기 암 환자인 미국인 존 디펜스가 펜벤다졸을 먹고 암이 완치되었다고 주장한 이후의 일입니다. 그의 암 완치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며 펜벤다졸 품귀 현상이 일었고, 실제로 말기 암 환자들이 펜벤다졸 복용을 했습니다. 



이후 펜벤다졸 품귀현상이 더욱 심해지자 대체재로 '사람용 구충제'로 알려진 알벤다졸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약학정보원에 따르면 알벤다졸은 기생충을 죽여 기생충에 의한 감염을 치료하는 구충제 성분 중 하나로, 기생충의 포도당 흡수를 방해해 에너지 생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기생충을 사멸시킨다고 합니다. 



알벤다졸은 이미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복용 후기와 복용 제안법 등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한 의학 전문가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강아지 구충제를 드시면서 궁금해하실 거다. 왜 굳이 강아지 구충제를 먹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셨을 텐데... 답부터 말하자면 사람 구충제도 항암효과가 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유튜브로 정보를 접한 뒤 오늘 약국에 가서 알벤다졸을 구입해 왔다. 평소 비염이 심했는데 효과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알벤다졸은 항암 효과 외에도 비염·치질·당뇨 등 다양한 질병에 치료 효과를 발휘한다는 내용으로 또다시 입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일부는 알벤다졸을 꾸준히 복용한 후 후기를 올리며 '자가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알벤다졸은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시판용 구충제로 기생충 감염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입니다. 알벤다졸은 1975년에 개발되었으며 WHO(세계보건기구) 필수 의약품 목록에 등재됐고, 알벤다졸 복용 방법은 400mg 한 알을 복용한 후 1~2주 후에 한 번 더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의 경우 대부분 편형동물 및 선형동물 등 몸에 기생하는 기생충 대부분이 박멸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알벤다졸 구충제는 대웅 알벤다졸 정 (대웅제약), 보령 알벤다졸 정(보령제약), 제니텔 정(테라젠이텍스), 알킬정(마더스제약) 등이 있습니니다. 특히 알벤다졸은 온라인에서 항암 효과 외에도 당뇨 및 대장 질환 등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꾸준히 복용해서 효과를 보았다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한편 서울에서 대장항문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이모 씨는 최근 지인을 통해 알벤다졸을 수십 통 구매했는데, 이 씨는 진료를 보는 대장암 말기 환자의 부탁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환자들은 펜벤다졸이 항암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구매하려 했으나 품귀 현상으로 구매가 어려워지자, 비슷한 성분인 사람용 구충제인 알벤다졸로 눈을 돌렸다고 합니다. 알벤다졸 마저도 약국에서 품절인 경우가 많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의사에게 부탁을 한 것입니다. 



알벤다졸은 1,2알에 1,000원 정도로 가격이 저렴하고 사람이 먹어도 안전하다는 인증이 된 의약품이라는 이유로 알벤다졸을 찾는 환자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마더스 제약에서 판매하는 '알킬정'은 올 11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배 255% 늘었고 현재는 일시 품절 상태라고 합니다. 유한양행의 '젠텔'도 2019년 11월 말 품절돼 재입고된다고 합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품절이 되는 약품이 아닌데 지난달(2019년 11월) 순간적으로 많이 팔렸던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보건당국은 알벤다졸도 항암 효과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경고합니다. 



식약청 관계자는 "알벤다졸도 펜벤다졸처럼 항암제로서 유효성이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대호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알벤다졸을 오래 섭취하면 간 독성이나 골수 독성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시중에는 이미 더 좋은 효과가 검증된 항암제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으로 알벤다졸의 복용법, 가격, 복용법, 효과, 부작용 등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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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은이 싱어즈 나이 본명 


2019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자대학교 문신 미술관 EBS 다큐멘터리 '싱어즈-시대와 함께 울고 웃다'(이하 싱어즈) 기자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상호 CP와 가수 혜은이, 이은하, 전영록이 참석했습니다. 



이날 혜은이는 '싱어즈'에 출연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EBS는 교육방송으로 알고 있는데, 가수들의 다큐멘터리를 다룬다고 했서 내심 놀랐다. (출연 제안이 왔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해야 해' 하면서 오케이했다. 촬영하는 내내 즐겁게 했다. 흥미 위주의 가수를 다루는 그런 프로그램이라면 하고 싶지 않았다. (EBS는) 격이 다르기 때문에 정말 흔쾌히 출연했다"고 말했습니다. 



'싱어즈'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온 국민들의 시름과 애환을 달래주고 때로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준 위대한 가수들을 집중 재조명하는 음악&인터뷰 다큐멘터리입니다. 송창식, 양희은, 전영록, 혜은이, 이은하, 한대수, 김수철, 송대관, 이장희 등 10명의 가수들이 릴레이로 출연하며, 내레이션이 없이 오직 가수의 노래와 진중한 인터뷰로 진행됩니다. 



국내 최초로 영상용 텔레프롬프터를 제작해 출연자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특수 촬영을 진행하여 시청자가 안방극장을 통해 스타와 생생한게 대면하는 느낌을 갖게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랜만에 방송에 나오는 가수 혜은이에 대해 포스팅하겠습니다.



[혜은이 프로필]



혜은이 본명: 김승주

혜은이 나이: 1956년 9월 23일생 만 63세

혜은이 고향: 제주특별자치도

혜은이 종교: 개신교

혜은이 학력: 대전 선화초등학교, 대전 호수돈여자중학교, 대전 호수돈여자고등학교,

혜은이 가족: 배우자 김동현, 사촌여동생 김승미(그룹 서울패밀리 가수)

혜은이 소속사: BSA 엔터테인먼트

혜은이 데뷔: 1975년 '당신은 모르실 거야'



혜은이는 1956년 제주도 제주시에서 '낙랑쇼'의 단장이자 유명 변사였던 김성택의 딸로 태어났으나, 혜은이가 7세 때 충청남도 대전시 선화동으로 이주하며 자랐습니다. 



1975년 혜은이는 '당신은 모르실 거야'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폭발적인 가창력과 미모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고, 1977년에 혜은이의 2집 '진짜 진짜 좋아해' 3집 '당신만을 사랑해'가 모두 히트하면서 인기 정상에 올랐습니다. 



혜은이는 10대 가수상, 가수왕, 최고 인기가수상 등 3사 통합 가수왕을 수상했고 혜은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페션의 선두주자로서도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콘이었습니다. 혜은이의 1집부터 14집까지의 모든 타이틀곡이 1위를 했다고 합니다. 



데뷔 앨범에 이어 발표한 2개의 앨범이 히트를 기록했지만 혜은이는 원래 가수할 생각이 없었는데, 아버지가 보증을 서주었다가 잘못돼서 길에 쫓겨나게되자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77년 일본 '야마하가요제'에 출전한 혜은이는 일본 빅터 레코드사에서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당신만을 사랑해'를 일본어로 내고 조용필에 앞서 혜은이는 일본 활동을 짧게 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에서 혜은이는 '강코쿠(한국) 아이돌'로 소개되었습니다. 1978년 혜은이는 태평양가요제 입상 후 배우 김자옥과 함께 동남아 지역에 화제를 몰고 다녔던 원조 한류스타이기도 했습니다. 1979년대 혜은이는 젊음의 아이콘으로 인기를 얻었고, '제3한강교'로 디스코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혜은이는 최초의 언니부대를 이끌고 다녔으며 패션, 헤어스타일 등의 유행을 창조한 스타이기도 했습니다. 예전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혜은이는 외모, 가창력, 춤 실력을 두루 갖춘 아이돌적인 요소가 있어서 지금의 아이유에 버금가는 위상을 갖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가장 핫한 인기 있는 가수였습니다.



1984년 혜은이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업가와 결혼했는데, 이 때 이미 5개월 된 딸을 임신한 상태의 결혼이어서 화제가된 바 있습니다. 그 후 1988년 혜은이는 성격차이를 이유로 이혼을 하였고, 1990년에 배우 김동현과 재혼하였습니다. 그 당시 김동현은 초혼이었기 때문에 김동현의 집안의 반대가 굉장히 심했지만 김동현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 후 김동현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혜은이가 보증까지 서는 바람에 굉장히 고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혜은이는 전 남편과 사이에 딸 한 명이 있으나 전 남편에게 양육권이 있고, 김동현과의 사이에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이상으로 혜은이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평안한 2020년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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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커 나이


'페이커' 이상혁이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1월1일 출연한다고 합니다. '페이커' 이상혁의 공중파 예능프로그램 출연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요, 이상혁은 2019년 11월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이상혁은 '라디오스타'에 직접 출연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방송 내에서 여러 번 언급되었다고 합니다. 



스포츠 스타 최고 연봉을 꼽을 때 프로게이머에서 '페이커'라는 이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라디오스타'에서 이상혁 외에 슈퍼주니어 김희철, 뮤지컬 배우 김소현,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이 함께 출연합니다. '롤 덕후'로 알려진 김희철은 이상혁의 열렬한 팬이라고 알려져 있어, 시청자들의 기대가 더해지고 있습니다. 과연 어떠한 이야기들이 오갈지 궁금해집니다. 페이커 이상혁에 대해서 포스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상혁 프로필]



이상혁 나이: 1996년 5월 7일생 만 23세

이상혁 고향: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이상혁 키: 176cm

이상혁 혈액형: O형

이상혁 학력: 등원중학교, 마포고등학교 (중퇴)

이상혁 가족: 아버지 이경준, 남동생 이상훈(1998년생)

이상혁 닉네임: Faker

이상혁 포지션: 미드

이상혁 소속팀: SK텔레콤 T1

이상혁 종목: 리그 오브 레전드

이상혁 데뷔: 2013년 'SK텔레콤 T1 K' 입단

이상혁 약력: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e스포츠 국가대표(2018), SK텔레콤 T1

이상혁 수상내역: 2019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서머 우승 외 30건



이상혁은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로서 2013년 4월 6일 데뷔하였고, 소속팀은 SK텔레콤 T1이며 포지션은 미드입니다. 이상혁은 아마추어 시절 '고전파'라는 닉네임를 사용하였으나, 닉네임을 변경하여 'SKT T1 Faker'라는 닉네임으로 프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이상혁은 전 세계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역사상 최고의 플레이어이자 최고의 미드라이너로 평가받는, 세계 최고의 인기와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e스포츠계 내에서 역대 최상위권 안에 뽑힐 것으로 평가되는 글로벌 스타입니다. 



이상혁은 라이엇 게임즈가 주관하는 국내 대회와 국제 대회를 모두 우승한 유일한 선수이면서, 세계 최대 규모의 e스포츠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을 3회 이상 우승한 선수이며 메이저 국제 통산 100승을 넘어선 유일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이상혁은 LCK에 2013년인 18세의 나이에 데뷔하여 이제는 마지막 남은 2세대 이하 원 클럽 플레이어로 LCK 리그, 2013년부터 시작된 SKT T1의 유일한 원년 멤버이자 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입니다. 



이상혁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보는 이유는 이상혁의 압도적인 커리어로, 공식 대회를 기준으로 월드 챔피언십 3회 우승(1회 준우승), 미드시즌 인비테이셔널 2회 우승(1회 준우승), LCK 8회 우승(1회 준우승)의 우승 경력은 팀의 초창기부터 함께 전성기를 보냈던 배성웅만이 유일하게 비교가 가능한 대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이상혁의 우승 경력은 늘 선발 내지 주역으로 일궈내면서 들어올린 우승이라 더 대단하다고 합니다. 



이상혁은 2013 스프링 시즌 데뷔한 이래 뚜렷한 전성기도 있었고, 중간에 침체기도 겪었던 선수였고, 모든 시즌 통틀어 골고루 최고의 반열에 올라 평가받는 선수는 아니였지만 무려 7년이라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에서 비교 대상이 불허한 커리어 우승 경력의 활약상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역대 최고의 미드이자 선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상혁은 2016 시즌 롤드컵 결승 이전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당시 국제 경기 다전제 매치에서 미드 라인전 승률이 94%라는 높은 수치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이는 전체 경기들의 승률에 비하면 대단히 높은 수치로, 이상혁이 중요한 무대에 임했을 때 그 만큼의 파워를 보여준다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혁은 실력적인 것 외에도 대단한 이유가 있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은 멘탈이라고 합니다. 이상혁이 데뷔 당시 18살, 96년생이라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혁의 과거 흔적들을 살펴보면 결점이 없는 순수한 모습이 자주 보인다고 합니다. 롤 프로게이머 대부분이 약한 멘탈 문제와 과거의 욕설, 트롤링, 등의 흑역사로 고통받는 것과 비교하면 이상혁은 멘탈갑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이상혁의 플레이 스타일의 주요 강점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저격 밴이 불가능한 매우 넓고 유동적인 챔프폭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압도적으로 뛰어난 피지컬에서 비롯된 매우 공격적인 플레이와 최고의 캐리력입니다. 그리고 환상적인 텔레포트&로밍 운영을 이용한 강력한 라인전입니다. 롤 플레리어들에게는 라인전, 한타, 운영의 3요소가 중요한 덕목이고, 대부분의 선수들은 저 중 하나의 강점을 가지기 마련인데, 이상혁은 프로게이머러서의 3요소(라인전, 한타, 운영)를 모두 갖춘 선수입니다. 



이상혁은 데뷔 이전의 해들을 제외하고 2010녀대 후반까지도 역대급으로 말이 필요없는 전무후무한 역대 최고의 미드라이너로서 여전히 평가되고 있습니다. 특히 이상혁은 서포팅형 챔피언을 사용하는 한타형 미드라이너로서의 역할, 혹은 운영혈 챔피언을 이용한 플레이와 여러가지 운영 증력, 거기에 암살자와 같은 슈터 하이퍼 캐리형의 챔피언을 사용하여 라인전과 로밍을 이용한 게임을 지배하는 등과 같은 부분에서도 이를 전천후로 번갈아가며서 신출귀몰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로는 이상혁이 거의 유일하다고 합니다. 이상혁의 닉네임인 '페이커'라는 뜻을 보면 사깃꾼이라는 뜻이 있는데, 르블랑이나 니코로 보여주는 신들린 속임수와 심리전을 보면 정말 잘 맞는 닉네임이라고 합니다. 



해외 경기를 나설 때면 공항에 팬들이 몰려들어 마치 록스타 내한 풍경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경기장은 매진을 기록합니다. 당연히 소속팀에서 이상혁의 대우는 최고라고 합니다. 이상혁의 추정 연봉은 '30억원+알파'로 국내 모든 프로스포츠 선수를 통틀어 압도적인 1위라고 하네요. 



이상혁의 모습은 슈퍼스타라기보다는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한 대학생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상혁은 마른 몸매에 수수한 헤어 스타일과 동그란 안경을 착용하고 있어 꾸미는 일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합니다. 이상혁은 1996년생으로 게임을 처음 해 본 것은 2000년대 초반이라고 합니다. 이상혁은 초등학생 때 오락실에서 게임하는 게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했고, 이상혁은 집에서 플레이스테이션 등 여러 게임을 모아둔 팩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네요. 이상혁은 용돈을 받아서 쓰는 입장이라 오락실에 자주 가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게임을 즐기는 것이 경제적이었고, 가끔 친구들이랑 게임하러 PC방에 가고 싶으면 버스비를 모아서 가고, 학교는 걸어서 갔다고 합니다. 



이상혁은 게이머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반대 대신 지지를 해줬다고 합니다. 이상혁은 중학교 때 집에서 게임을 열심히 했지만 학교 성적도 상위권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정도까지는 성적 유지가 됐는데 2학기부터는 떨어졌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프로게이머가 되면서 학업을 중단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상혁은 수십억 원대의 연봉을 받지만 재산 관리는 부모님이 해주시는 편이라 돈에는 신경 안 쓰고, 한 달에 20만~30만원 정도 쓴다고 했습니다. 이상혁은 이상형이 '나보다 LoL 잘하는 여자'라고 말한 적도 있으나 농담으로 한 말이었고, 프로 생활을 하다보니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으며, 굳이 답하자면 생각이 잘 통하고, 키 큰 사람을 좋아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상으로 페이커 이상혁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활기찬 2020년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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