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 나이 고향
18일 이세돌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바디프랜드 사옥에서 열린 NHN의 바둑 AI 한돌과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배 이세돌 vs 한돌'치수고치기 3번기 제1국에서 92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습니다. 이세돌 9단과 한돌의 대결로 분위가 한층 고조된 가운데 이창호 9단에 대한 관심도 있어, 이창호 9단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이창호 9단 프로필]
이창호 나이: 1975년 7월 29일생 만 44세
이창호 고향: 전라북도 전주시 중앙동2가
이창호 학력: 서울충암고등학교
이창호 가족: 아버지 이재룡, 어머니 채수희, 형 이광호, 동생 이영호, 부인 이도윤, 딸 이소정, 이시연
이창호 단급: 프로9단
이창호 입단: 1986년
이창호 소속: 한국기원
이창호 최대연승기록: 41연승(세계1위)
이창호 누적 우승경력: 140회(한국 바둑기사 2위/ 1위 조훈현)
이창호 주요경력: 최연소 국제 바둑 기전 우승(16.5세/ 제3회 동양증권배)
이창호는 1975년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의 이창호는 곱게 자란 부잣잡 도련님에 꽤 고집이 세고 식탐도 있던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이창호의 동생에 따르면 어릴 적 이창호가 문구점에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안 사주자 아무 말 없이 씩씩거리다가 그대로 문구점 유리에 몸을 내던져 머리를 박고 기절했다고 합니다. 깨진 유리에 머리를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붕대를 감고 온 뒤, 다음 날에도 바둑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 고집이 후에 뚝심이 되어 돌부처 이창호의 근원이 되었을 수도 있었는가 봅니다.
4살이 되던 해에 이창호의 할아버지였던 이화춘(1986년 사망)에게서 바둑을 처음 배운 이창호는 1984년 두 차례의 시험기를 거치며 이정옥 9단, 전영선 7단을 사사하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이창호가 10살이 되던 해, 조훈현의 내제자(집에서 숙식을 같이 하는 제자)로 들어가, 11세에 최연소 기록 2위로 프로에 입단하였습니다. 바둑을 배운지 4년 만에 입단한 것입니다. 이창호는 입단 시험도 10살 때 한 번 보고 떨어진 후, 다음 해인 11살 때 통과한 것으로 보아 배운 지 3년 만에 연구생 1조까지 올랐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나 조훈현은 이창호의 이런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늦게 입단했다고 생각하여 정말 천재가 맞는가 하고 의구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창호는 프로기사가 된 후에도 남들보다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급기야 13살의 나이에 바둑왕전 타이틀을 따냈습니다. 그 당시 지금에 비해 한국기원 선수층이 얇았다지만, 조훈현, 서봉수 다음의 '도전 5강'(서능욱, 강훈, 김수장, 장수영, 백성호)이 10년의 도전 속에서도 단 하나의 타이틀만을 딴 것을 감안한다면 이창호의 13세 우승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14세 때 이창호은 타이틀 수를 늘리더니, 15세 때에는 조훈현과의 번기 대결에서 연이어 승리하여 한국 최고의 다관왕이 됩니다. 프로기사 입단을 해도 빠르다는 나이에 이미 한국 프로기사의 정점에 섰던 것입니다.
이창호가 스승의 타이틀을 계속 빼앗아 오면서 조훈현 집에서 어색한 시간이 늘어감에 따라, 결국 조훈현이 평창동으로 이사를 할 때 이창호는 분가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한국 바둑의 정점에 서자 일본에서는 '일본기원과 바꾸더라도 이창호를 사고 싶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소년 이창호에 대해 일본 기사들은 호기심을 가졌고, 공교롭게도 린하이펑이라는 거물급 기사와의 세계대회(제3회 동양증권배) 결승에서 이창호가 승리했습다. 그리고 당시 일본의 최강 기사였던 조치훈 9단은 이창호와의 대국에서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창호는 누구보다도 어린 나이에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뛰어난 실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뒤 기복없이 성적을 낸 이창호는 절대 본좌였던 스승인 조훈현을 결국 무관으로 만들어 버리고, 1994년 13관왕을 하는 등 독주를 이어갔습니다. 이런 이창호의 독주는 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무려 15년이 약간 안 될 정도로 긴 세월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이창호는 승률왕을 독식하였으며 일 년에 한 명 나타날까 말까 한 80%대의 승률을 수 차례 걸쳐 달성합니다. 이창호의 평생 승률이 73%이니 이것만으로도 전설입니다.
1996년 6월 이창호는 7단에서 9단으로 한국 바둑 사상 최초의 2단을 한번에 특별 승단 하였습니다. 이세돌은 승단대회를 거부하여 국제 바둑 기전 우승 시 점프 승단 규정을 만들어 냈지만, 이창호는 이런 규정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 특별 승단을 한 것입니다. 우승 역시 통산 138번의 우승(비공식 기전인 타이다배와 세계 최강 결정전은 제외), 조훈현의 157번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국제대회 우승을 한 기사이기도 합니다. (2009년 통산 21회 우승) 이창호는 해외 경험이 쌓이며서 말도 안 되는 승률을 과시하며 세계 바둑계를 정복(?)하였습니다.
이창호는 17세 때 국제대회 최초로 우승한 이후 20대 후반인 2002년가지 국제대회 결승에서 무패 행진에 가까운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1회 춘란배 결승에서 조훈현에게 한 번 패함) 즉 이창호는 결승에만 오르기만 하면 우승을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합니다. 이세돌의 경우 1990년대 후반기인 17세 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나 이창호에 의해 항상 1인자로 올라서지 못했고, 이창호가 노화로 인해 기량이 쇠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을 본다면 그만큼 이창호의 전성기 시절의 기량은 최정상급의 한 수 위에 있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또한 이세돌과 이창호의 상대 전적도 이창호가 아직 앞서며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번기 대결에서도 이창호가 7승 3패로 우위라는 점은 이창호가 그만큼 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지 현재 바둑계의 추세상 대부분의 기전이 속기인데다 이창호의 강점인 정밀한 끝내기가 눈에 띄게 약해진 점을 감안한다면 30대 중반에 접어들어 성적을 내는 것은 무리일 듯싶습니다. 이창호와 비슷한 또래인 기사들은 한중일 통틀어 모두 한물간 것을 감안한다면 그나마 이창호이니가 한국 랭킹 2위에 해당하는 성적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창호 바둑의 가장 큰 특징은 두터움, 침착함, 형세판단, 끝내기입니다. 이창호는 강태공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느려 보이나 두터운 행마를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다른 기사들이 아무리 유리해도 이창호는 두텁고 침착하게 두어 정확한 끝내기로 마무리해 역전시키니 그 중압감과 패배감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창호는 반집의 근소한 차이로 이기는 경우가 많은데, 반집 승부를 하는 이유는 반집으로 이기나 불계로 이기나 이기는 것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조건 잡을 것 같은 대마를 잡지 않는 습관도 있는데, 그 이유는 대마를 잡으려다 보면 운과 실수로 판이 뒤집힐 수도 있지만 대마를 죽이지 않고 계가로 가면 반드시 이길 수 있어서라고 합니다.
이창호는 매우 깨끗한 사생활을 하였고 그러다 11세 연하인 바둑 전문기자 이도윤과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이창호가 36세인 2010년 10월 28일 결혼을 하였으며 2012년 3월 8일 득녀했습니다. 2015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등장인물 최택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으며, 과묵하고 순진한 최택의 성격, 보석상을 하시는 부친, 농심배 5연승을 연상케 하는 대국, 중국 대국시 현지 요리에 적응 못해 배탈이 나서 식사를 거르는 장면 등 여러 부분이 차용되었습니다. 이창호 9단은 이 드라마를 보고 실제 자신은 어린 시절 바둑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또래 친구가 거의 없었는데 최택 9단은 동네 단짝 친구들이 있어 부러웠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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